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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6-11-29 (화) 09:53 추천:0 조회:5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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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어(1885.10.7 ~ 1962.11.18) 덴마크의 물리학자.1885년 10월 7일 코펜하겐에서 출생하였다. 1903년 코펜하겐대학교에 들어가 물리학을 공부하고, 1911년 논문 〈금속의 전자론(電子論)〉으로 학위를 받았다.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학교의 J.J.톰슨, 맨체스터대학교의 E.러더퍼드 밑에서 연구하였다. 당시 러더퍼드의 연구실에서는 α선 산란(散亂) 실험이 행해졌고, 러더퍼드는 원자의 핵모형(核模型)을 제출하였다. 귀국 후 1912년 코펜하겐대학교 강사가 되어, 원자모형 연구에 착수, 러더퍼드의 모형에 플랑크의 양자가설(量子假說)을 적용함으로써 원자이론을 세우고, 수소의 스펙트럼계열 설명에 성공하였다(1913).후에 이것은 정상상태(定常狀態)의 개념을 전제로, 양자조건 및 진동수 조건으로 규정된, 보다 일반적인 원자이론으로 정리되어 보어의 원자이론이 되었다. 이 이론으로 고전론(古典論)과 양자론이 결합되었고, 양자의 개념을 처음으로 복사(輻射) 이외의 경우에도 적용, 원자의 구조와 원자스펙트럼을 밝혀졌으며, 전기(前期)양자론 연구의 계기가 되어, 후에 양자역학으로 발전하였다. 1916년 코펜하겐대학 이론물리학 교수가 되었고, 강좌에 부속된 연구소 신설을 제의, 1921년 그 소장이 되었다. 이것이 코펜하겐대학 이론물리학연구소이며, 새로운 물리학 연구의 중심으로서, 많은 인재를 길러 물리학 발전에 공헌하였다. 이 연구소에서 양자론, 즉 양자역학의 개발을 추진했는데, 특히 대응원리(對應原理)와 상보성원리(相補性原理)를 제창했다. 1922년 원자구조론 연구 업적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1930년경부터 연구는 원자핵으로 기울어, 원자핵을 원자의 경우에 비해 보다 고전적으로 다룰 수 있음을 지적, 핵반응을 설명하는 액적모형(液滴模型)을 제출, 증발이론으로서 핵반응론의 출발점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과 미국에 건너가 맨해튼계획에도 참가하였고, 전후에는 코펜하겐으로 돌아갔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원자무기의 발달에서 생긴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며, 이들 문제의 연구를 공개하도록 주장, 국제연합에 공개장을 보내는 등(1950) 정치적 행동도 취하였다. 보어의 원자이론(Bohr's theory of atomic structure) 1913년 N.H.D.보어가 제창한 원자구조와 원자스펙트럼의 이론. 1911년 E.러더퍼드가 원자의 구조는 중심에 (+)전하를 가진 원자핵이 있고, 그 둘레를 (-)전하를 가진 전자가 돌고 있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확인했는데, 이러한 구조가 어떻게 안정하게 존재할 수 있는가를 전기양자론(前期量子論)에 의하여 처음으로 설명하는 데 성공한 이론이다. 전자는 양자화(量子化)된 특별한 에너지를 가진 궤도만 돌 수 있다는 것과 수소 원자가 방출하는 빛의 스펙트럼 등을 설명함으로써 고전물리학과 양자역학의 교량 구실을 했다. 이 이론에 입각한 원자모형을 보어의 원자모형이라고 한다. 상보성(complementarity - 相補性) N.H.D.보어가 불확정성원리에 의한 양자역학의 해석을 강조하기 위해 도입한 철학적 개념. 양자역학에서는 입자의 운동을 시공적(時空的)으로 기술(記述)할 때, 불확정성원리가 보이는 바와 같이 인과적(因果的)인 경과를 추적할 수 없다는 불확정성을 보인다. 또 인과적으로 표현하려고 하면 파동역학(波動力學)이 보이는 바와 같이 파동성을 띠게 되므로, 입자의 궤도와 같은 시공적 결정성을 가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양자역학의 성격을 시공적 기술과 인과성과는 서로 상보적인 성격을 가진다고 표현하며, 또 입자적 표현과 파동적 표현은 서로 상보적이라고 한다. 불확정성원리를 만족하는 두 변수, 즉 한쪽을 정하면 나머지 한쪽이 부정(不定)이 되는 두 변수도 상보적이라 한다. 좌표와 그것에 켤레인 운동량은 역시 이와 같은 관계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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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어(1885.10.7 ~ 1962.11.18) 덴마크의 물리학자.




